패왕별희霸王别姬) Farewell My Concubine , 1993 제작
BBC 선정
"100대 비영어권 영화"
"타임지 선정 100대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제45회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霸王别姬): 초(楚)나라 패왕 항우가 우희(우미인)와 이별하다.
이 작품의 제목답게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초패왕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를 그린 경극이다. 여러 장면이 나오는데, 뎨이와 샤오러우,, 쥐셴의 상황과 시대상을 은유하고 있다.
장르: 드라마, 경극
감독: 천카이거
원작: 이벽화 - 소설 《사랑이여 안녕》[1]
각본: 이벽화
제작사: 베이징 필름 스튜디오
배급사: 미라맥스/ 하명중영화제작소
개봉일: 홍콩 1993년 1월 1일 / 중국1993년 7월 26일
대한민국 1993년 12월 23일 / 2023년 4월 1일 (장국영 추모 20주기 재개봉)
시간: 156분 (국내 최초 개봉), 171분 (확장판) / 15세 관람가
첸카이거 감독
이름 천카이거(번체: 陳凱歌, 간체: 陈凯歌) Chen Kaige
출생 1952년 8월 12일 (70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국적 중국 / 학력 베이징전영학원
중국의 영화감독이다.. 중국 영화 세대 구분에서 장예모와 함께 제5세대 감독이라고 부르는 감독의 대표주자이다. 영화감독. 천 화 이 아이의 아들로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절 그는 중학생이었고, 홍위병에 가담하여 아버지를 비난했다. 이 당시의 경험은 패왕별희에 잘 묘사된다.. 1976년..1976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화 대혁명이 끝나자 그는 대학입시를 치러 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 1982년에 졸업한다. 이때 동문이 장예모
그는 영화를 더 공부하러 뉴욕대학교의 영화학과에 방문학자로 유학했고, 그 때 듀란 듀란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어.이어 <현위의 인생>(중국제목 변 주변창, 1991)으로 서양 비평계의 상당한 호평을 받는다. 1993년.1993 장국영과 공리(배우)를 기용해 내놓은 <패왕별희>는 대호평을 받았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등장인물]
청뎨이 (두지) 역 - 장국영
경극 패왕별희에서 여성인 우미인(우희) 역을 맡는다. 참고로 경극은 원래 남자들만 연기하는 게 전통으로(旦: 단), 여자 역할도 당연히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고 한다. [9].[9] 자신을 어릴 때부터 감싸준 샤오러우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다.
출생; 1956년 9월 12일 영국령 홍콩 구룡반도
사망: 2003년 4월 1일 (향년 46세) 홍콩섬 중서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위패 홍콩 Sha tin 311, Pai tau street Po Fook Hill Cemetery (보선사)
국적 영국령 홍콩 → 캐나다
본적 광둥성 신체 175cm[6] | 70kg | O형
직업 가수, 배우, 작곡가, 영화감독
데뷔 1977년 앨범 <I Like Dreamin'>
학력 리즈 대학교 (섬유학 / 중퇴)
대표작품
패왕별희(霸王別姬), 영웅본색(英雄本色), 해피투게더,아비정전,동사서독.등이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홍콩 영화와 홍콩 누아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배우와 가수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홍콩 스타였다. 특히 홍콩 영화가 아시아권에서 가진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시아권에서는 주윤발, 성룡, 매염방, 적룡 등과 함께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스타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소위 '무적 3인방'(장국영, 알란탐, 매염방) 중 1명이며 이들은 90년대에 등장한 홍콩 사대천왕(장학우, 유덕화, 곽부성, 여명)여명) 보다 선발주자로 분류된다.
홍콩 영화가 인기가 많았던 대한민국답게, 한국에서도 장국영의 인지도와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웅본색>, <동사서독>, <아비정전>, <종횡사해>, <패왕별희>, <금지옥엽>, <해피투게더>, <이도공간> 등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은 대한민국 박스오피스에서 큰 히트를 기록했고 여러 비디오와 DVD로 불티나게 팔렸다. 장국영은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총 6번 내한했는데, 내한할 때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해외스타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묵고 있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하여 향년 46세로 생을 마감했다. 홍콩 영화계의 톱스타였던 장국영의 죽음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일으켰으며, 특히 그의 팬층이 집중되어 있던 아시아권에서는 쇼크와도 가까운 일이었다. 장국영이 투신자살한 뒤 6명의 팬이 함께 투신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나고, 여러 뉴스에서 특보로 보도하는 등 그의 죽음이 준 충격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2020여 년이 넘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2005년에는 중국영화 100주년 기념 가장 사랑받는 남자배우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매년 4월 1일 홍콩에서는 그를 기리는 성대한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뒤셴菊仙: 국선, 주샨) 역- 공리
홍등가의 "화만루"라는 유곽에서 일하던 매춘부. 눈치 백 단에 됨됨이도 웬만하며 대단히 영리하다. 화만루에서 여러 변태 남자들에게 수모를 당할 뻔한 것을 샤오로우가 구해준 이후[13] 유곽에서 나오며, 자신을 구한 샤오로우와 연애 끝에 결혼한다. 샤오로우를 두고 청뎨이와는 연적으로 긴장관계가 있으며 쥐셴은 청뎨이가 샤오로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본명 Li Gong (리 공)/巩俐(궁리, Gǒng Lì)
출생 1965년 12월 31일 (57세) 랴오닝성 선양시
국적중국 → 싱가포르
신체 169cm, 56kg, A형
데뷔 1987년'붉은 수수밭'
장예모 감독의 페르소나로, 영화 <붉은 수수밭>, <국두> 등의 영화에 출연한 뒤 이 영화들이 칸 영화제 등 유명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화제가 되자 크게 유명세를 얻기 시작해 1990년대 중국 영화 황금기와 더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제 영화제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패왕별희 같은 예술성을 지향하는 영화에 다수 출연하였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개방화되자 진용 같은 홍콩, 대만의 무협, 누아르 등 상업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예술적 명성을 가져다준 배역은 질곡의 중국 근대사를 살아가는 여인들이었다. <붉은 수수밭패왕별희>, <인생>, <홍등>, <국두귀주 이야기> 등 역사의 격동 속에서 무력하게 휩쓸리는 여성 역할은 공리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돤샤오로우段小樓: 단소루,시투단소로, 시투) 역 - 장풍의 [张丰毅],
직업 영화배우/ 출생일 1956.09.01. 출생지 중국/성별 남성 신체 182cm
항우 역으로 패왕별희에 출연하는 배우. 경극학교 시절부터 뎨이를 항상 보살펴 왔다. 경극학교를 탈출해 무단으로 외출했던 뎨이가 스승에게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자 스승에게 대들어서 청뎨이를 구한다. 뎨이는 그에게 동성애적 연정을 품지만, 샤오로우는 현실과 극을 혼동하지 않고 동료로서만 뎨이를 보살핀다. 여자를 좋아하는 확고한 이성애자이다
드라마: 손자대전 - 손무 역 / 대청풍운 - 도르곤 역/ 무미랑전기 - 당 태종 이세민 역
영화: 패왕별희 - 샬로 역 /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 - 조조 역
[시놉시스]
경극을 하는 두 남자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경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
어려서 북경 경극학교에 맡겨진 두지(장국영)와 ‘시투’(장풍의)는 노력 끝에 최고의 경극배우가 된다. 여자 역할을 맡았던 두지는 시투를 흠모하게 되는데, 시투에게 사랑하는 여인 ‘주샨(공리)이 생기면서 방황을 한다. 두지는. 아편에 손을 대고, 시투는 주샨에게 빠져 산다. 이를 시작으로 두 남자는 중국의 역사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한다.
1977년, 불이 꺼진 체육관에 경극분장을 한 두 남자가 들어온다.. 그들은 한때 경극배우로 명성을 떨쳤던 돤샤오러우와 청뎨이로,, 무대에 나오지 않은 건 20년 가량, 서로를 못 본지는10년가량 되었다고 한다. 매우 작게 등장하는 체육관 관계자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요즘은 문화 대혁명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후, 오래간만에 경극을 하고 싶다는 두 사람을 위해 조명을 준비한다. 그리고 우미인이 목을 긋는 것을 향해 손을 뻗는 항우의 그림을 배경으로 패왕별희가 시작된다......
1924년, 베이징 경극학교에 더우쯔(豆子:(豆子: 콩알)라는 소년이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매춘부였던 더우쯔의 어머니 옌홍(蔣文麗(蔣文麗 분)은 어느 정도 자란 사내아이를 유곽에서 키울 수 없어서 무작정 아들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섰다가 경극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 중 샤오라이즈란 소년이 달아나면서 공연은 엉망이 되고 사람들은 사부에게 엉터리 쑈로 사기를 쳤다고 항의하지만 이때 스터우가 진짜 쑈를 보여주겠다면서 벽돌을 머리로 깨는 묘기를 보임으로 사부를 구해준다.
이걸. 본 옌홍은 아들은 경극학교에 맡기려고 했지만, 본래 육 손이었기 때문에 경극학교에서 더우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옌홍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하다고 버리지만 말아달라면서 아이만 받아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눈웃음을 짓지만, 관 대인은 "천하다니? 자네나 나나 마찬가지지! 배우 될 팔자가 아닌 것을 어쩌겠나?"라고 완곡히 거절한다. 그러자 옌홍은 식칼로 그의 손가락을 강제로 잘라내어 절박한 진심을 표하고 이에 관사부도 뜻을 굽혀 더우쯔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이후 두 소년이 경극을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를 어우르는 50 연간의 그들만의 서사를 그려나간다.....
다시 영화 첫 장면인1977년으로 돌아와, 세월이 흘러 마오쩌둥도 사망하고 문화혁명이라는 명분으로 경극을 탄압한 4인방도 체포되어 문화 대혁명의 영향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샤오러우와 뎨이는 관객 없이 둘만의 패왕별희를 연기하다가 절정 부분에서 숨이 딸려 공연을 멈춘다. 자신이 늙었음을 한탄하는 샤오러우와 그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뎨이.. 갑자기 샤오러우가 뎨이에게 어렸을 적 계속 틀렸던 대사를 외치며, 뎨이가 대사를 틀리게 말하도록 유도한다. 유도에 말려들어 대사를 틀린 뎨이는"나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거늘..." 하며 중얼거린다. 샤오러우는 '또 틀렸지?'라며 웃고, 뎨이는 뭔가 깨달은 듯 그 구절을 한번 더 중얼거린다.
이후 재개한 연습에서 다시 극은 절정으로 치달아, 둘은 우희가 패왕의 검을 뽑아 자결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샤오러우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기 직전, 뎨이가 샤오러우를 향해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경극의 장면처럼 뎨이는 샤오러우의 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샤오러우는 뎨이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다가, 나지막하게 더우쯔의 이름을 읊조리며 막이 내린다.
이후 1990년, 베이징에서 경극 200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완전히 끝이 난다. 그리고 수미상관처럼 영화 시작 부분에 나왔던 항우와 우미인의 그림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About Movie]
1993년 중국의 진개가(천카이거, 陳凱歌)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홍콩의 작가인 이벽화(李碧華)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원작자가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제목인 패왕별희는 본래 사면초가와 함께 항우와 우희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고 있는 고사를 바탕으로 하는 경극 작품이며,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곧 영화의 제목이다.
1993년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피아노와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한 작품이며, 한국에선 1993년 12월에 하명중영화제작소가 수입 후 개봉되었다.
2017년과 2021년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을 했다. 기존 156분 분량에서 15분이 추가됐고,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화질도 보강된 완전판으로 공개되었다.
감독 천카이거는 중학생 때 문화 대혁명을 겪었고, 직접 홍위병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동을 벌였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 속 문화대혁명 시기 예술과 가족의 관계성이 탄압받는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중국 상영판에서는 뎨이가 자살하지 않고, 샤오러우와 공연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페이드 아웃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극 패왕별희의 내용을 반영한 영화답게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면초가와 같이 뎨이와 샤오러우가 몰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샤오러우를 잡아가 협박하는 일본군, 경극을 방해하며 소리를 지르는 국부군, 관객석에서 크게 노래하는 홍 군,, 문화 대혁명 때의 홍위병 등등. 또한 홍위병이 든 깃발의 색깔과, 유방의 나라인 한나라를 상징하는 색깔은 둘 다 붉은색이다.
[Behind Movie]
배우 장국영은 중성적인 뎨이의 모습과 경극 패왕별희 속 여인인 '우희'의 모습, 그리고 동성애 성향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그가 훗날 (비공식적으로) 양성애자임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부분.
장국영이 캐스팅되었을 때 천카이거는 홍콩 배우가 뎨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때 장국영은 자신이 뎨이에 적격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엄청난 열연을 펼쳤다. 뎨이가 원세경에게서 검을 받아 인력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장국영의 연기를 보고 제작진들이 모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해외 언론들도 장국영의 연기에 감탄했지만, 이미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던 장국영에 대해 '신인인데도 연기력이 너무 훌륭하다'며 이런 배우를 어디서 발굴했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국영의 아역으로 나오는 두 명의 소년배우들은 외모가 출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아이는 장국영의 어린 시절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아역은 실제 여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모가 돋보이는데, 특히 눈에서는 눈물, 입가에서는 피를 흘리며 경극 투자자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93년은 아직도 중국이 경직되었을 때라서, 이 영화의 중국 내 상영은 엄격히 제한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문제삼은 표면적인 이유는 동성애와 자살 미화.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 대혁명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현재는 제작된 지 오래되기도 했고, 국제 영화계에서 상을 휩쓰는 등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며, 그동안 배달의 기수식의 관제-선전 영화만을 만들어 와서 수준이 저평가되었던 중국영화의 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칭송되어, 아무 제한 없이TV에서 틀어주고 있었다.
감독판은 중국판보다 1515분 정도 길다. 감독판에 늘어난 장면은 상영에서 지나치게 늘어졌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동성애와 같이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장면 등이라고 한다. 이런 장면들은 뎨이와 샤오러우의 어린 시절 일부, 장내관의 뎨이의 강간장면, 뉘앙스칭과 뎨이의 동성애 장면(베드신), 뎨이의 아편흡입, 홍위병의 인민재판 일부 등이라고 한다.
원래 뎨이의 배역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은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역을 맡은 존 론이었다. 존 론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에서 경극학교를 다녔고, 그 시점에서 서방 영화계에서는 마지막 황제덕에 장국영보다는 존 론이 더 유명했기 때문에 배역을 맡아도 그다지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은 아무래도 장국영이 뎨이와 더 맞다고 판단, 원작을 쓴 이벽화와 접촉해서 장국영을 움직였다고 한다.
장국영은 홍콩 토박이라서 광둥어가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며 표준중국어(보통화)를 못했으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보통화를 열심히 익혀서 보통화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경극(京劇)은 문자 그대로 베이징의 지역의 전통 가무극이기 때문인 것도 있고, 경극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대사와 가사가 보통화 밑 백화문으로 되어 있다. 또한 경극 무용도 짧은 시간에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완벽히 습득했다고 한다.
스태프진은 아이돌 가수출신인 장국영이 영 못 미더워서 대역을 할 수 있는 경극 배우 두 명을 대기시켰으나, 이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장국영은 뎨이 역을 완벽히 소화해 냈다.. 주인공들의 옷차림과 마차와 인력거에서 승용차로 바뀌는 거리 풍경의 모습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대사]
{한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번 흐느끼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니(一笑萬古春, 一啼萬古愁)...一啼萬古愁)... 당신을 노래한 것 같군.}
- 항우 분장을 한 원대인, 우미인 분장을 한 채 검으로 자결하는 장면을 연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청뎨이에게..
{인간의 삶은 무상하여 봄날의 꿈과 같고 (人生在世如春梦)}
- 청뎨이, 貴妃醉酒(귀비취주의 대사 중 하나.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도 아닌 것이 머리를 깎여(我本是男儿郎,又不是女娇娥,被师傅消去了头发)...}
- 어린 시절의 청뎨이(더우쯔),(더우쯔), 이 노래는 공곡 [77] <얼해기(孼海記)> 중에서 한 막인 사범(思凡)에서 나오는 한 곡인 <山坡羊·小尼姑年方二八> <山坡羊·小尼姑年方二八>의 대사라고 한다. 비구니역의 등장인물이 하는 노래인데, 원래는 "나는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我本是女娇娥,又不是...)라고"(我本是女娇娥,又不是...) 해야 한다. 청뎨이는 자꾸 반대로 노래한다.
{일생을 같이 하기로 했잖아. 일 년, 한 달, 일 초라도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건 일생이 아니야...}
- 청뎨이청뎨이, 돤샤오러우에게.
{네 붉은 화장을 지운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널 몰라볼 줄 아니?}
- 유곽의 여성 포주, 홍등가를 떠나는 쥐셴에게..
{그(청뎨이)는 경극에 미쳤습니다. 경극에 미쳐서... 관객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노래를 했습니다.}
- 샤오러우, 자신을 비롯한 경극배우들을 포박한 격양된 홍위병들에게
{두려워. 구름 사이로 높은 건물의 난간에 서있는 꿈을 꾸었지. 뛰어내리고 싶었는데...(샤오러우: 내가 받으면 되지. 당신은. 거기에 없었어. 날 버리지 마.}
- 쥐셴, 샤오러우에게.
2023년 4월14월 1일 장국의 20주기를 맞아 왕가위 감독의 “ 해피투게더” 와 함께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하는 천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패왕별희”는 개인적으로 장국영의 최고작품이자 중국영화 사상 최고의 명작이라고 꼽는 작품이다. 현재 제작되는 공산당을 칭송하는 국뽕 가득한 중국영화가 아닌 중국의 아픈 근현대사를 중국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경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 예술가의 생애를 진솔하게 그렸다는 점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명작이 아닌가 싶다.